이승우, 월드컵 '신'의 승부수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처음 선발로 경기(13일 우디네세전)를 뛰었잖아요. 풀타임을 소화해서 정말 피곤했는데, 신기하게 러시아월드컵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눈이 번쩍 떠지더라고요.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대표선수 명단 발표 장면을 지켜봤어요. 방송 화면에 제 얼굴과 이름이 나올 땐 심장이 뛰더라고요. 기쁘고, 후련하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었죠. 이제 선배들과 함께 러시아에 가서 맘껏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어요." 14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 응한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 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밝았다. 이승우는 이날 서울시청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러시아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기자회견에서 28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20세 이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 출전한 지 1년 만에 더 큰 무대로 뛰어오를 기회를 잡은 셈이다. 지난해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A(프로축구 1부리그)에 진출한 이후 한 시즌 동안 혹독한 생존 경쟁을 거친 이승우는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또 한 번 성장한다는 각오다. 신태용(48) 감독은 수비수 김민재(22·전북), 미드필더 염기훈(35·수원)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FIFA에 제출할 월드컵 최종 엔트리(23명)보다 5명을 더 뽑았다. 다음 달 3일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로 건너가기 직전까지 선의의 경쟁을 유도한 뒤 23명을 추릴 계획이다. 이승우가 23인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려 다음 달 15일 개막하는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하면 한국 축구 역사상 세 번째로 어린 나이(20세 5개월)에 월드컵 본선을 경험하는 선수가 된다. 고교 졸업 직후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던 전북 현대의 베테랑 공격수 이동국(39·당시 19세 2개월)과 고종수 대전 시티즌 감독(39·당시 19세 8개월) 다음이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던 김주성(52)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실장과 비슷한 나이다. 성인 무대를 처음 경험한 2017~18시즌, 이승우의 당면 과제는 '수비'였다. 헬라스 베로나 입단 직후 '공격력만큼은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체격이 작고 수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좀처럼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시절 '수비 가담을 줄이고 골 넣는 데 집중하라'는 주문을 받던 이승우에겐 모든 게 낯설었다. 달라진 환경이 승부 근성에 불을 지폈다. 소속팀 수비 전술 훈련에 열심히 참여했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 밀도를 높였다. 무게 중심을 낮추는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몸싸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애썼다. 이승우는 "덩치 큰 유럽 선수들과 효과적으로 몸싸움하는 요령을 알고 싶어 유럽에서 뛴 선배님들의 노하우를 여쭤보기도 했다"면서 "'덩치가 작아 유럽에선 힘들 것'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출장 기회를 늘리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올해 초엔 K리그 진출까지 모색했다. 모 구단과 임대 이적을 전제로 연봉 등 구체적인 조건까지 의견을 나눴지만, K리그 선수 이적 규정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프로축구연맹은 해외에서 성인팀에 등록한 한국인 선수가 K리그 클럽에 입단할 경우 등록 후 5년간은 임대 없이 완전 이적만 가능하도록 정해놓았다. 어린 유망주들의 조기 해외 진출 시도를 막기 위해 K리그가 만든 로컬 룰이다. 전 소속 팀 바르셀로나에 150만 유로(19억원)를 주고 이승우를 영입한 베로나가 한 시즌을 채우기도 전에 재이적을 허락할 리가 만무했다. 백업 멤버로 세리에A 데뷔 시즌을 마치는 듯했던 이승우는 특유의 득점 본능을 앞세워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지난 6일 강호 AC밀란과 원정경기(1-4패)에서 위력적인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데뷔골을 뽑아냈다. 이후 구단 안팎에서 '이승우를 중용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13일 우디네세전(0-1패)에서 정규리그 첫 선발 출장과 함께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승우는 "한순간도 국가대표 발탁과 월드컵 참가라는 목표를 잊은 적이 없다"면서 "대표팀에 합류하면 형들과 호흡을 맞추는데 전념하겠다. 단 1분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팀만 생각하며 뛰겠다"고 다짐했다. 이승우 발탁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이다. 대표팀 경쟁구도에 건전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공격 패턴 다양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손흥민(S)과 이승우(L), 권창훈(K)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독일의 유명 자동차 회사가 출시한 자동차 모델명(현재는 SLC)이기도 하다. 세 선수 모두 최전방과 2선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플레이 스타일도 서로 다르다. 함께 뛰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조합이다. 이승우는 "형들과 함께 뛰며 많이 배우고,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대표팀에 어울리는 선수라는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은 "이승우는 20세 이하 월드컵 때 함께 생활하며 장·단점을 모두 파악한 선수"라면서 "대표팀에 포함시킨 건 '여론 달래기'나 '미래 대비' 차원이 아니다. 1승 상대로 점찍은 스웨덴전의 비밀병기로 염두에 두고 있다. 체격이 크지만 민첩성이 부족한 스웨덴 선수들의 허점을 파고들 수 있는 공격 카드"라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email protected]